금요일의 반찬통

1챕터 · AI 시작

금요일마다 비어 있는 반찬통 1개가 꼭 돌아왔다. 2025년 11월, 오후 7시 15분. 창원 성산구의 회사 셔틀버스에서 내리면 나는 늘 같은 길로 아파트 단지 안 상가를 지난다. 1층 반찬가게 유리 안에는 멸치볶음, 무생채, 계란말이가 네모난 스테인리스 통에 담겨 있고, 그날그날 할인 스티커가 붙는다. 혼자 사는 지 2년째가 되자 저녁을 고르는 일은 거의 계산처럼 굳어졌다. 국 1개, 반찬 2개, 김치 있으면 끝. 가게 사장인 오경자는 내가 문 열고 들어갈 때쯤 집게를 먼저 든다. "오늘은 제육 괜찮아요. 늦게 와도 안 말랐어." 그런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누가 내 시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피곤한 날에는 배려처럼 느껴졌으니까. 그 안심이 불편해진 건 3주 전부터였다. 반찬통은 늘 현관 앞에 내놓으면 다음날 수거해 가는 방식인데, 금요일 저녁에만 내놓지 않은 통이 비어 있는 채로 싱크대 옆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처음엔 내가 깜빡한 줄 알았다. 술도 안 마셨는데 그럴 수 있나 싶었지만, 그 주는 야근이 4일이었고 눈이 계속 뻑뻑했다. 두 번째 금요일에는 통 뚜껑 안쪽에 내가 쓰지 않는 고춧가루가 묻어 있었다. 세 번째 금요일에는 더 분명했다. 내가 산 적 없는 연근조림 냄새가 났다. 반찬가게에서 파는 것과 같은, 약간 단 간장 냄새. 나는 통을 들고 한참 맡다가 스스로 우스워졌다. 냄새만으로 뭘 안다는 건가. 사람은 보고 싶은 쪽으로 기억을 고친다. 나도 요즘 그랬다. 회의실에서 분명 들은 말을 메신저 기록에서 찾지 못하고, 퇴근하면서 잠갔다고 생각한 서랍이 아침에 열려 있는 날이 있었다. 내 감각이 먼저 틀어졌다면, 나머지는 거기에 맞춰 설명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오늘은 물어보려고 했다. 계산대에 통을 올려놓자 오경자가 한 번 보고, 내 얼굴을 한 번 봤다. "이 통, 혹시 금요일마다 누가 다시 갖다 놓나요?" 내가 묻자 그녀가 비닐장갑 낀 손으로 이마를 긁었다. "다시? 무슨 말이야? 수거는 오전 11시 전에만 하지." "제가 안 내놓은 것도 집에 있더라고요. 비어 있는 채로요." 오경자는 바로 웃지 않았다. 그게 더 싫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데도, 잠깐 계산하는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헷갈릴 때도 있지." 그녀는 말을 끊고 안쪽 주방을 돌아봤다. 스테인리스 선반 뒤에서 포장 소리가 났다. "민수 씨가 금요일 저녁 배송 돌 때 그쪽 라인 지나가긴 해. 근데 네 집은 배달 안 하잖아." 민수 씨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나는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집에 올라와 냉장고 자석 아래 끼워 둔 영수증들을 꺼내 날짜를 맞춰 봤다. 금요일 3번, 모두 영수증 하단 메모란에 작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인쇄가 아니라 볼펜으로 그은 표시. 내가 한 적 없는 표시였다. 나는 원래 체크를 할 때 동그라미 대신 사선을 긋는다. 그건 확실했다. 적어도 그 정도는. 하지만 그 확실함도 10초쯤 지나면 금이 갔다. 혹시 전화 받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그렸을 수도 있었다. 혹시 경자가 주문 확인하려고 표시했을 수도 있었다. 혹시, 하고 생각하는 동안 싱크대 위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반찬통, 오늘은 밖에 안 내놓으셨네요." 남자 목소리는 낮았고, 너무 또렷해서 오히려 장난처럼 들렸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도, 베란다 쪽에서 비닐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내가 묻자 상대는 2초쯤 숨소리만 냈다. "금요일엔 늘 7시 전에 비워 두시던데요. 오늘은 늦으셨네요." 전화가 끊긴 뒤에도 화면에는 통화 시간 18초가 남아 있었다. 나는 거실 불을 끄지 않았는데, TV 옆 검은 유리에는 내 뒤쪽 주방이 더 어둡게 비쳤다. 그리고 싱크대 끝, 반찬통 3개 사이에 내가 사 온 적 없는 작은 투명 용기 1개가 끼어 있었다. 뚜껑 위에 검은 유성펜으로,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경자가 방금 전 계산하면서 했던 말이 그제야 이상하게 돌아왔다. "혼자 살면 헷갈릴 때도 있지." 아파트 관리실 야간 근무자가 순찰을 도는 시간까지는 12분 남아 있었다. 경찰에 먼저 전화할지, 다시 아래로 내려가 오경자에게 민수 씨가 누구인지 물을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만, 닫힌 베란다 창 쪽 비닐 스치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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