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보관함
1챕터 · AI 시작
아침 8시쯤의 병원은 아픈 사람보다 서두르는 사람들로 먼저 가득 찬다. 나는 서울 서북쪽에 있는 성운병원 1층 로비에서 번호표를 뽑고도 바로 접수대로 가지 못한다. 내 차례가 늦어서가 아니라, 누군가 내 뒤에 서 있다가 내가 돌아보면 한 걸음 비켜나는 느낌이 아까부터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로비 바닥은 밤새 닦아 놓은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안내 봉사자 조끼를 입은 노인 둘, 채혈실 쪽으로 뛰는 보호자 하나, 접수창구 앞에서 서류철을 여는 남자 하나. 사람은 많은데 방금 나를 본 사람만 눈에 안 들어온다.
2주 전부터 어머니의 검사 예약을 내가 대신 챙기고 있고, 오늘은 결과 듣는 날이다. 어머니는 영상의학과 앞 의자에 앉아 있고, 나는 신분증과 진료카드만 들고 원무창구 쪽 줄에 선다. 집에서 챙겨 온 누런 서류봉투는 어머니 옆 빈 의자에 두고 왔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꼭 챙겨 입는 회색 가디건 위로 목도리를 한 번 더 두른다.
"지후야, 접수 오래 걸리니?"
어머니가 멀리서 묻는다.
"금방이야. 앉아 있어. 물 마셨어?"
어머니는 대답 대신 종이컵을 들어 보인다. 그때 내 왼쪽 옆을 누가 지나가며 팔꿈치로 내 서류 모서리를 건드린다. 진료카드가 바닥에 떨어진다. 나는 바로 주워 든다. 하얀 카드 뒷면에 접착 자국 같은 게 묻어 있다. 원래 없던 거다. 손톱으로 밀어 보니 투명한 테이프 조각이 끝만 남은 채 붙어 있다. 누가 뭔가를 붙였다가 급히 떼어낸 것처럼.
접수창구 직원이 손짓한다.
"보호자분, 성함 말씀해 주세요."
"윤지후요. 환자는 박선자고요."
직원은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한다. 그리고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아까 한 번 취소하셨다가 다시 오신 거예요?"
나는 못 들은 척 다시 묻는다.
"네?"
"같은 환자분 오전 예약 취소 요청이 먼저 들어왔거든요. 보호자 본인 확인이 안 돼서 보류됐는데요. 방금 전이에요."
내 손에 들린 신분증 모서리가 접힌다. 나는 오늘 병원에 오자마자 어머니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고, 바로 이 줄에 선다. 취소를 요청할 틈도, 이유도 없다. 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모니터를 돌리려다가 멈춘다. 개인정보 때문에 보여줄 수 없다는 걸 뒤늦게 떠올린 표정이다.
"전화로요?"
내가 묻자 직원이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직접 오셨어요."
나는 어머니 쪽을 돌아본다. 어머니는 그대로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런데 옆 빈 의자에 봉투가 없다.
"엄마, 봉투."
거리가 멀어 어머니는 못 듣는다.
복도 끝 분실물 보관함 앞에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다. 등을 보이고 있어 얼굴은 안 보인다. 옆구리에 낀 누런 봉투 모서리만 보인다.
뒤에서 누가 내 등을 민다.
"끝나셨으면 좀 비켜 주세요."
나는 줄에서 빠져나온다. 복도 끝까지는 스무 걸음쯤이다. 그 사이에 남자가 없다. 보관함 문은 전부 닫혀 있다.
나는 칸마다 손잡이를 당겨 본다. 다 잠겨 있다. 마지막 칸에서 손을 떼는데, 그 안에서 작은 걸쇠가 한 번 딸깍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