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틀에 붙은 예보
1챕터 · AI 시작
비가 오기 18분 전이면 창문이 먼저 젖었다.
2044년 6월, 군산 월명동의 오래된 양장점 2층 작업실에서 나는 그 시간을 거의 틀리지 않고 맞혔다. 하늘은 아직 밝은데 유리 안쪽 가장자리에만 얇은 물막이 올라왔다. 시에서 보급한 미세기후 필름이 창틀에 붙은 뒤로 생긴 버릇이었다. 필름은 바깥 공기보다 조금 먼저 습도와 전하 변화를 읽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걸 편하게 "창문 예보"라고 불렀고, 나는 재단가위보다 그걸 더 자주 쳐다봤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재봉틀 옆 벽시계는 오후 4시 12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나는 셔츠 소매 끝에 넣을 기억섬유 테이프를 7cm씩 잘라 작은 접시에 담아두고 있었다.
기억섬유는 세탁을 40번쯤 견뎌냈다. 그 정도면 계절 하나는 버티는 셈이었다. 소매 안쪽에 붙여두면 체온과 맥박을 읽고, 옷 입은 사람의 자세를 따라 가장 자주 하는 움직임을 저장했다가 조금씩 되돌려줬다. 어깨를 덜 굽히게 하거나, 한동안 잊고 지낸 걸음걸이를 몸이 먼저 떠올리게 하는 식이었다. 병원에서 쓰는 교정용보다 훨씬 약하고, 그래서 더 일상적인 물건이었다. 나는 그 테이프를 주로 상복이나 면접용 재킷, 오랜만에 다시 입게 된 제복 수선에 붙였다. 옷은 사람보다 먼저 예전 자세를 기억하니까.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났다. 손님이 들어오면 문 위에 매단 황동 방울이 2번 울렸다. 나는 접시를 밀어두고 계단 쪽으로 몸을 내밀었다. 올라온 사람은 우비를 팔에 걸친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젖은 건 우비뿐인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에게서는 오래 물에 담갔다 꺼낸 종이 냄새가 났다.
"수선 맡기려고요?"
내가 묻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나보다 한참 어렸고, 머리는 귀 밑에서 단정하게 잘려 있었다. 그녀는 접어 온 얇은 코트를 작업대 위에 펼쳤다. 남성용 여름 코트였고, 소매 끝은 심하게 닳아 있었다. 안감 목 부분에 박힌 세탁 태그는 오래전에 색이 빠졌는데, 그 위에 최근에 덧댄 작은 칩이 하나 보였다. 시신경 보조기나 보행 보정기에 들어가는 저전력 기록칩이었다. 옷에 달기에는 드문 부품이었다. 여자는 아버지의 코트라고 했다. 작년에 보행 재활을 끝낸 뒤로, 그 코트만 입으면 집 안에서도 자꾸 역 쪽으로 걸어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칩을 달아 언제, 얼마나 움직이는지 보려 했는데, 2주 전부터는 반대가 됐다고 했다. 코트를 입으면 현관도 못 넘고, 발을 내딛기 직전마다 멈춘다는 말이었다. 의사는 근육 문제는 아니라 했지만,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코트 깃만 만졌다. 손톱이 짧아 천이 더 구겨졌다.
나는 코트를 들어 안쪽 솔기를 살폈다. 기억섬유를 덧댄 흔적이 있었다. 시제품처럼 조잡했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누군가 이 옷에 한 사람의 걸음을 남겨두려 했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남겨진 게 정말 걸음뿐이냐는 거였다. 기억섬유는 자세와 리듬을 저장하지만, 드물게는 사람이 멈추던 순간의 환경값까지 함께 물고 늘어졌다. 냄새, 소리, 특정 방향의 빛. 그래서 어떤 옷은 입는 사람을 곧게 세우고, 어떤 옷은 문턱 앞에서 오래 서 있게 했다. 내가 칩 내용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묻자 여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이상한 게 있어도 놀라지 말아 달라고 하며, 코트 안쪽 포켓에서 얇은 리더기를 꺼내 내 쪽으로 밀었다. 화면에는 이동 기록 대신 짧은 문장 하나만 반복되어 있었다. 6월 11일, 6월 14일, 6월 18일. 모두 오후 7시 03분. 같은 문장이었다.
도착하지 말 것.
나는 손끝으로 화면을 넘겼다. 보행 칩에서 나올 데이터가 아니었다. 발의 압력, 속도, 방향값 대신 문장이 들어 있었다. 리더기 아래쪽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창문 예보가 비 시작 10분 전을 알릴 때 나는 소리였다. 그런데 작업실 안 공기는 아직 말라 있었고, 창밖 골목에는 먼지가 그대로 떠다녔다. 비 냄새는 없는데, 내 귓가에서는 빗방울이 처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여자는 자기도 그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코트를 펼치면 늘 그렇지만, 이상한 건 그다음이라고 하려는 듯 입술을 다물었다. 그 사이 리더기 화면 아래 숨겨진 파일명이 한 줄 더 떠올랐다. 나는 아직 그 줄을 읽지 못했다. 여자가 먼저 내 얼굴을 보고, 왜 아버지 이름을 보고 놀라는지 물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코트 주인의 이름을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비는 10분 후에 온다. 그 전에 이 옷을 다시 입혀 볼지, 칩부터 지울지, 둘 중 하나를 고르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