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뽑는 창구

1챕터 · AI 시작

새벽 4시가 지나면 나는 창구 턱에 굵은소금을 뿌린다. 플라스틱 통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큼 집어, 유리 아래 턱을 따라 한 줄로 얇게 흘린다. 흰 줄이 생기고 나면 대합실 쪽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한 번 나고 멈춘다. 이 시간 대합실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다. 나는 돌아보지 않는다. 소금선을 그어 두면 창구 앞까지는 오지 않는다. 2년 하는 동안 넘어온 적은 없다. 첫차 전에 표를 끊으러 오는 손님은 하루에 서넛이다. 그중 한둘은 창구 유리에 입김이 서리지 않는다. 사람이 말을 하면 유리 아래쪽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천천히 걷히는데, 그 손님들은 아무리 오래 말해도 유리가 맑다. 그런 손님한테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받아 두면 다음 날 금고 안에서 젖은 모래로 바뀌어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접시를 내민다. 그들은 접시에 젖은 모래를 한 줌 올려놓고, 손을 떼면 모래는 접시 모양대로 눌린 채 굳는다. 나는 그걸 종이봉투에 쓸어 담아 금고 맨 아래 칸에 넣는다. 봉투는 지금 17장이다. 오늘은 문이 열릴 때마다 미역 비린내가 들어온다. 포항은 겨울 끝 새벽이면 항구 바람이 역까지 올라온다. 전광판에는 첫차 3대만 켜져 있고, 형광등 아래 의자는 아직 차다. 나는 승차권 뭉치를 맞추고, 도장 잉크 뚜껑을 열어 두고, 창구 유리 오른쪽 아래에 붙은 안내문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손끝으로 눌러 본다. "해 뜨기 전 승차권은 이름을 두 번 확인합니다." 터미널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 아는 문구다. 한 번만 확인하고 발권하면 표가 두 장 나온다. 한 장은 손님 것이고, 다른 한 장에는 발권한 직원 이름이 찍힌다. 그때 유리를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자 창구 앞에 여자가 서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회색 패딩에 운동화를 신었고, 머리끝이 젖어 무겁게 처져 있다. 손에는 접은 우산을 쥐고 있는데 우산 끝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닥에도 자국이 없다. "영덕 가는 거 있어요?" 나는 유리 아래쪽을 본다. 맑다. 여자의 운동화 앞코는 소금선을 절반쯤 넘어와 있다. 사람이 밟으면 소금알이 옆으로 밀려 자국이 남는데, 선은 방금 뿌렸을 때 그대로다. "첫차는 아직 좀 남았어요. 이름 먼저 말씀해 주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창구 유리에 붙은 내 명찰을 내려다본다. 파란 플라스틱에 이도윤이라고 적혀 있다. "도윤 씨가 적어 주세요. 제가 쓰면 글씨가 안 남아요." 나는 발권 용지를 당겨 펜을 든다. 종이 맨 위에 날짜 칸이 있고, 그 아래에 이름 칸이 있다. "몇 장 드릴까요?" "두 장이요." "일행 있으세요?" "하나는 제가 타고, 하나는 먼저 간 사람이 타요." 나는 이름 칸에 첫 획을 긋지 못한다. 그 전에 발권기가 먼저 돈다.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 기계 안에서 종이 뜯기는 소리가 나고, 표 2장이 밀려 나온다. 출발지 포항, 도착지 영덕, 시간은 첫차. 첫 번째 표의 이름 칸은 비어 있다. 두 번째 표에는 이도윤이라고 찍혀 있다. 나는 이름을 두 번 확인하지 않았다. 내가 표를 든 채 서 있는 동안 여자는 창구 바깥이 아니라 내 등 뒤를 본다. 나는 돌아선다. 잠겨 있어야 할 직원용 문이 손가락 하나만큼 벌어져 있고, 그 틈으로 젖은 모래가 한 줄 흘러 들어와 있다. 모래 위에는 회색 패딩이 개켜져 놓여 있다. 가슴께에 파란 플라스틱 명찰이 달려 있고, 거기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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