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지 않은 사람
1챕터 · AI 시작
대전 순환버스 창에는 승객의 잔상이 남는다. 누가 내리면 그 사람이 앉았던 모습이 창에 몇 초 머물다 흐려진다. 처음엔 다들 멀미 난다고 싫어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아침 8시, 나는 맨 뒷자리에서 그 창들을 본다. 정류장마다 사람이 내리고, 잔상이 남고, 흐려진다.
앞문 옆 큰 창의 잔상 하나만 흐려지지 않는다. 회색 셔츠, 두 번 걷은 소매, 왼손 엄지에 대충 감은 투명 테이프.
윤호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 넉 달 전 연락이 끊긴 동료. 종이에 손끝이 베이면 밴드 대신 테이프를 감던 사람.
잔상은 방금 내린 사람에게서만 생긴다. 오늘 이 버스에서 윤호를 본 사람은 없다.
"뒤에 계신 분."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본다.
"그 창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분, 매일 이 시간에 내려요."
"매일요?"
"넉 달째요. 타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내리기만 해요."
버스가 정류장에 선다. 앞문이 열린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큰 창의 회색 셔츠가 천천히 흐려진다. 그리고 그 옆 창에 새 잔상이 하나 맺힌다.
내가 오늘 입고 나온 남색 코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