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그릇의 금

1챕터 · AI 시작

부산 서면의 생활도자기 공방은 5월 저녁 8시가 지나면 유약 냄새보다 사람 손의 온도가 오래 남았다. 나는 마감 30분 전마다 진열대 맨 아래 칸의 유리그릇들을 다시 닦았다. 닦을수록 지문은 더 잘 보였고, 형광등 불빛은 얇은 금선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금이 간 건 불량이라서 빼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그릇을 제일 오래 쥐고 있게 됐다. 손바닥 안에서 미지근해진 유리가 쉽게 놓이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계산대 옆 벽시계가 8시 12분을 가리킬 때, 문이 한 번 열리고 닫혔다. 바람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 바깥 먼지 냄새에 섞인 아주 약한 세제 향이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가 바로 내렸다. 손님이 들어오면 보통 먼저 인사해야 하는데, 그날은 내가 먼저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금방 알았다. 지난주부터 수요일마다 10분쯤 늦게 와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머그잔 손잡이만 만져 보고 가는 사람이었다. 이름은 몰랐고, 카드 단말기에 찍힌 성만 한 번 봤다. 이준. 그 뒤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선반 앞에 서서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손등이 희어서 유리 표면의 먼지가 더 잘 묻어날 것 같았다. 셔츠 소매를 두 번 접은 팔목이 보였고, 시계 자국만 남아 있었다. 나는 괜히 계산대 아래 영수증 뭉치를 맞췄다. 종이 끝이 손톱 밑을 스쳤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말은 했는데, 물건보다 다른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들린 것 같아 바로 후회했다. 그가 내 쪽을 보았다. "지난번에 있던 접시요. 가장자리 얇은 거." "아, 그건 오늘 빠졌어요. 금 가서요." "금 간 건 버리나요?" 그는 묻고 나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진열대 아래에서 문제의 그릇을 꺼내 들었다. 빛 아래로 기울이자 금은 선이라기보다 아주 얕은 떨림처럼 보였다. "쓰다가 더 벌어질 수도 있어서요." "그래도 예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목이 말랐다. 물건 얘기인데, 내 쪽으로 너무 가까이 온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릇을 다시 내려놓지 못하고 가장자리만 엄지로 문질렀다. 얇은 턱이 손끝에 걸렸다. 그는 한 발도 가까워지지 않았는데, 계산대 안이 갑자기 좁아진 것 같았다. 공방 안은 조용했지만 바깥 도로에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가 유리문을 타고 들어왔다. 그 소리와 다르게, 그의 말은 아주 가까운 데서 들렸다. 사장님이 버리라고 했는지, 내가 정리하는 거라 아직 안 버린 건지 묻는 말을 듣는 동안에도 나는 대답을 매끈하게 잇지 못했다. 버리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릇이 아니라 내 손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금이 간 데를 자꾸 만지게 되는 버릇, 깨질 수 있는 걸 멀리 못 두는 습관 같은 것들. 그런 건 처음 보는 손님한테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준은 내가 말하지 않은 데서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이었다. 휴대폰이 계산대 위에서 한 번 울렸다. 사장인 혜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8시 30분쯤 도착. 마감 내가 할게." 오늘은 분명 내가 혼자 닫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일정이 바뀐 모양이었다. 18분 후면 혜진이 온다. 그때까지 이준은 나갈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그릇 하나를 사 갈 수도 있고, 내가 먼저 물어볼 수도 있었다. 왜 매주 수요일 같은 시간에 오는지. 접시를 찾는 건지, 금 간 물건을 보는 건지. "그거, 제가 사면 안 돼요?" 그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가격표를 찾는 척 고개를 숙였다. 금이 간 유리 가장자리가 형광등을 받아 잠깐 번들거렸다. 분명 눈으로는 얇은 선 하나였는데, 손끝에는 벌써 조금 더 깊어진 흠처럼 느껴졌다. 그때 문 바깥에서 혜진 목소리가 들렸다. 통화 중인 듯 웃으면서, 또렷하게. "민서야, 너 또 그 손님 기다렸지?" 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2초쯤 걸렸다. 내가 한 번도 입 밖에 꺼낸 적 없는 사람을, 혜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문은 아직 닫혀 있었는데 발소리는 가까워졌고, 나는 그제야 대답을 어느 쪽으로 해야 하는지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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