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선 지도
1챕터 · AI 시작
바닷물이 빠진 뒤의 갯벌은 늘 같은 색이 아니었다. 2041년 4월, 전남 신안군 비금도 서쪽 염전은 해가 올라오기 전 30분 동안만 회색과 분홍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나는 그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새벽 5시 40분이면 작업장 뒤 계측대부터 확인했다. 오늘도 수면 높이, 염도, 미세조류 농도까지 숫자는 가지런했다. 가지런한 날은 오히려 마음이 덜 놓였다. 이상은 대개 예쁜 그래프를 하고 왔다.
내 이름은 윤해솔이고, 염전 관리사라는 명찰을 달고 다닌 지 6년째다. 예전 같으면 사람 둘이 삽으로 고랑을 정리했겠지만, 지금은 물길 위를 다니는 얇은 부유막이 대부분의 일을 대신했다. 손바닥만 한 제어패드를 켜면 각 판의 막이 미세하게 접혔다 펴지며 소금이 맺히는 속도를 맞췄다. 멀리서 보면 물 위에 투명한 비닐을 띄운 것 같지만, 가까이 가면 막 표면에 실금 같은 회로가 지나갔다. 햇빛과 바람을 읽고, 소금이 어느 결로 자랄지 먼저 계산하는 막이었다. 덕분에 생산량은 늘었고, 대신 사람은 숫자를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
문제는 17번 판이었다. 어제 저녁 기록에는 없던 선이 밤사이 생겨 있었다. 결정들이 한쪽으로 눕듯이 자라면서, 바닥에 가느다란 곡선을 남겼다. 나는 장화를 신고 판 가장자리로 내려섰다. 바스러지는 소리가 발밑에서 얇게 났다. 곡선은 바람 방향하고 맞지 않았다. 물이 흘렀다면 남을 자국도 아니었다. 누가 손가락으로 소금 위를 짚어 간 것처럼 보였는데, 폭이 정확히 2cm였다. 너무 일정해서 오히려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았다.
"또 나왔어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민준이었다. 이번 달에 들어온 현장 보조로, 아직 햇볕 탄 자국이 장갑 끝과 손목에서 선명하게 갈라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어제는 11번 판, 오늘은 17번 판. 간격이 같아." 민준이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는 잠깐 말이 없더니 제 팔목 단말기를 들어 선을 스캔했다. 얇은 빛이 표면을 훑고 지나갔다. 잠시 후 단말기 화면에 섬 윤곽선 같은 형상이 떴다. 나는 그제야 민준 쪽을 봤다. 비금도 지도가 아니었다. 현재 해안선도 아니었다. 물길 복원 사업 전에 사라진 옛 염전 구획하고 비슷했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손으로 그려 보여 준, 태풍 오기 전의 바닷길.
작업장 천막 안에서 호출음이 울렸다. 오전 7시 정기 수거선이 들어오기 25분 전이었다. 그 배가 오면 오늘 생산분을 실어야 하고, 17번 판은 밀어 정리해야 했다. 정리 버튼을 누르면 이 선은 3분 안에 사라진다. 남겨 두면 수율이 떨어져 이번 주 계약 물량을 못 맞출 수 있다. 나는 패드를 켠 채 화면과 소금판을 번갈아 봤다. 숫자는 여전히 정상 범위였다. 그런데 내 코에는 분명 마른 소금 냄새만 들어오는데, 귓가에서는 아주 얕은 물이 고랑을 따라 미는 소리가 났다. 지금 이 판에는 흐를 물이 없었다. 민준은 방금 스캔한 화면을 뒤집어 내 쪽으로 밀어 주었다. 화면 한구석, 자동 비교 기록란에 지난 14일간 같은 선형 패턴이 저장돼 있었다. 사용자 확인 이력은 모두 내 계정으로 남아 있었다. 수거선은 25분 후에 도착한다. 선을 지울지, 아니면 내가 이미 14번이나 본 것을 먼저 인정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