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 냄새
1챕터 · AI 시작
서울 성북구 돈암동의 오래된 빌라 5층, 10월 밤 9시 40분쯤이면 복도에는 늘 같은 냄새가 찼다. 따뜻해진 철문, 누군가 막 접어 넣은 셔츠의 섬유유연제, 그리고 아주 잠깐 스치는 국물 냄새. 나는 그 시간이 되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갔다. 일부러 맞춘 건 아니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문을 잠글 때마다 내 손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맞은편 504호 문이 열리는 소리를 놓치기 싫어서였다.
그 집에 이사 온 사람의 이름이 서준이라는 걸 안 건 2주 전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 택배를 잘못 올려 보냈고, 내가 박스를 들고 504호 앞에 섰을 때였다. 문을 연 사람은 생각보다 젊었고, 막 샤워를 끝낸 얼굴로 보였다. 젖은 머리에서 물 냄새와 비누 냄새가 같이 났다. 그는 박스를 받아 들면서 송장에 적힌 이름을 먼저 확인했다. "아, 제 거 맞네요. 감사합니다." 그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고, 닫히는 문틈으로 실내등의 누런 빛이 잠깐 내 발등까지 흘렀다. 그 뒤로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번, 편의점 봉투를 든 채 한 번 더 마주쳤다. 인사는 늘 비슷했다. 짧고, 예의 바르고, 더 이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내가 문을 닫기도 전에 504호 쪽 손잡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괜히 봉투 매듭을 다시 당겼다. 비닐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서준은 검은 맨투맨 차림이었고, 손에는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빵집 로고가 찍힌 봉투였다. 복도 센서등이 한 박자 늦게 켜지면서 그의 어깨와 목덜미가 먼저 밝아졌다. 가까이 선 것도 아닌데, 갓 구운 빵 냄새가 먼저 왔다.
"늦게 들어오시네요."
그가 먼저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인사인지 질문인지 잠깐 헷갈렸다.
"네, 야근이 좀 길어서요."
"아." 그가 웃는 것 같다가 말았다. "그럼 저번에도 그 시간에 들어오신 거였어요?"
저번이라고 하면 어느 날을 말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서준은 내 옆으로 두 걸음쯤 떨어져 섰다. 복도 창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찬 바람이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손등은 뜨거웠다. 그가 든 봉투 윗부분이 살짝 벌어져 있었고, 안에 식빵 하나와 작은 상자가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올라오는 동안 우리는 둘 다 전광판만 봤다. 나는 혼자 산다는 말이 왜 설명처럼 들리는지 생각했다. 내가 묻지도 않은 걸 덧붙일 때 사람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였다. 경계하거나, 더 말하고 싶거나. 둘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서 더 구분하기 어려웠다.
문이 열리기 직전, 아래층 402호 정희 씨가 계단으로 올라오다가 우리를 보고 멈췄다. 한 손엔 재활용 봉투, 다른 손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어머, 둘이 같이 나가요?" 하고 웃더니,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말을 이었다. "지수 씨, 요즘은 9시 40분만 되면 꼭 나오더라. 쓰레기 매일 생기지도 않을 텐데." 정희 씨는 가볍게 말했지만, 내 귀만 뜨거워졌다. 나는 아니라고 바로 부정해야 했는데, 그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렸다. 문은 분명 눈앞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서준의 발소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가는 데는 30초도 안 걸린다. 그런데 10분 후면 엄마가 보낸 배 상자가 경비실에서 폐기될 수도 있었다. 내려갈지, 그냥 다시 들어갈지,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