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밑의 흰 가루

1챕터 · AI 시작

강릉 주문진수산시장에서는 2028년 11월에도 생선보다 먼저 저울이 깨어났다. 최다온은 새벽 4시 20분에 점포 셔터를 반쯤 올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 타일은 밤새 식어 있었고, 스티로폼 상자 옆에 둔 고무장화는 한 짝이 약간 돌아가 있었다. 그는 늘 하던 순서대로 불을 켜고, 플라스틱 대야를 씻고, 칼집에서 칼을 꺼내 물에 적셨다. 마지막은 저울이었다. 은색 접시가 달린 전자저울은 전원을 넣기 전에도 이상하게 반듯해 보였다. 다온은 저울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한 번 쓸었다. 새벽마다 거기에는 밀가루처럼 고운 흰 가루가 1g쯤 모여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천장 석고가 떨어진 줄 알았고, 다음에는 소금인가 했고, 3주째부터는 그냥 버렸다. 시장에서는 이유를 모르는 것들이 대개 먼저 자리를 잡고, 사람은 나중에 거기에 맞춰 살았다. 옆 칸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 예순이 넘은 선우가 기침을 두 번 하고 말했다. "오늘도 나왔어?" 다온은 대꾸 대신 휴지로 가루를 닦아 쓰레기통에 털었다. "매일 나와요. 형님네도 그래요?" "우린 저울 안 써. 손으로 달아도 손님들이 안 따지잖아." 선우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온 쪽을 한 번 더 봤다. 그 시선은 가루보다 저울에 오래 머물렀다. 다온은 전원을 눌렀다. 숫자 0이 떠오르고, 그 밑에 아주 짧게 다른 자릿수가 스쳤다 사라졌다. 그는 늘 그걸 못 본 척했다. 숫자가 흔들리는 저울은 시장에 흔했고, 사람들은 흔들리는 쪽에 몸을 맞추는 데 익숙했다. 5시가 넘자 첫 손님들이 들어왔다. 국을 끓일 잡어를 찾는 할머니, 펜션에 낼 회거리를 미리 보는 남자 둘, 손에 장갑도 안 낀 채 오징어를 만져보는 관광객. 다온은 평소처럼 값을 부르고, 비닐을 묶고, 얼음을 퍼 담았다. 이상한 건 대개 6시 전후에 생겼다. 손님이 물건을 올릴 때마다 저울은 실제 무게보다 꼭 12g씩 더 적게 표시됐다. 광어 한 마리는 12g, 멸치 한 봉지는 12g, 얼음까지 같이 올려도 12g. 더 적게, 혹은 더 많게가 아니라 정확히 12g이었다. 다온은 처음엔 배터리 문제라고 생각해서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그래도 같았다. 접시를 닦고, 바닥을 다시 수평으로 맞추고, 저울을 옆으로 7cm 옮겨도 같았다. "사장님, 이거 좀 적게 나온 거 아니에요?" 장갑 낀 손님 하나가 물었다. 다온은 재빨리 손저울을 가져다 다시 달았다. 이번에는 정상 수치가 나왔다. 손님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돈을 냈다. 이상하게도 전자저울만 그랬다. 게다가 문제가 생기는 시간도 들쭉날쭉하지 않았다. 전광판 시계가 6시 12분을 지나면 시작됐고, 6시 24분이 되면 멈췄다. 12분 동안만, 모든 것이 12g 부족해졌다. 다온은 그 사실을 4일 전에 알아냈고,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숫자를 믿는 사람은 책임까지 같이 떠안기 쉬웠다. 7시 무렵, 얼음 납품하러 오는 지게차가 통로를 지나갔다. 바닥이 울리자 저울 아래에서 또 흰 가루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조금 많았다. 다온은 몸을 숙였다. 가루 사이에 젖은 것처럼 뭉친 부분이 있었고, 그 안에 아주 작은 비늘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은색도 아니고 투명에 가까운 비늘이었다. 시장에서 보던 어떤 생선의 것과도 달랐다. 그는 손끝으로 건드리려다 멈췄다. 비늘은 분명 딱딱해 보였는데, 닿지도 않았는데 물 위를 스치는 소리가 났다. 선우가 통로 건너편에서 다온을 불렀다. 다온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오늘 새벽, 셔터를 올리기 전에 저울 접시가 젖어 있었던 건 기억났다. 물이 아니라 손바닥 자국처럼 둥글게 남은 젖음이었다. 그 위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저울은 잠깐 48kg을 찍었었다. 그는 그 숫자를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시장 방송에서는 8분 후에 위생 점검이 돈다고 알리고 있었다. 다온의 코에는 아직 비린내가 먼저 닿았는데, 귀에는 물결이 낮게 접히는 소리가 더 가까웠다. 선우는 통로 끝에서 다온을 보고 있었고, 저울 액정에는 꺼져 있어야 할 숫자 하나가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12가 아니라, 이름처럼 읽힐 만큼 또렷한 자릿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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