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는 시간표

1챕터 · AI 시작

정오 12시가 되기 3분 전이면, 광주 북구 용봉동의 시립수영장은 가장 조용해졌다. 물속에 사람이 14명이나 들어가 있는데도 그랬다. 발차기 소리는 줄어들고, 레인 줄에 닿는 손바닥 소리도 뜸해졌다. 다들 벽에 한 번씩 붙어서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전광판에는 현재 시각, 수온 27도, 그리고 오늘의 급수 예보가 번갈아 떴다. 오전에는 보통 '약함'이었고, 정오엔 자주 '보통'이었다. 서윤은 킥판을 정리하다가 마지막 줄을 기다렸다. 수영장 바닥 타일 사이사이에 낀 검은 줄은 매일 봐도 개수가 달라 보였다. 그는 강습반이 끝난 뒤 남는 시간에 레인을 닦고, 분실물을 정리하고, 가끔 접수대도 봤다. 정식 직원은 아니고 아르바이트였지만, 정오 전 10분만큼은 누구보다 정확했다. 물이 올라오는 날엔 사다리를 빼야 했고, 안 올라오는 날엔 그냥 방송만 흘러나왔다. 천장 스피커에서 안내음이 짧게 울렸다. 이어서, 늘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정오 급수까지 2분 남았습니다. 중간 수심 표식을 확인해 주세요." 처음 오는 사람들은 꼭 접수대에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오래 다닌 사람들은 묻지 않았다. 서윤도 처음 일하러 왔을 때는, 수영장에 무슨 급수가 있느냐고 되물은 적이 있었다. 민호는 오늘도 샤워실 쪽 문턱에 걸터앉아 출석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젖은 슬리퍼 바닥이 타일에 달라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얇은 소리가 났다. "4번 레인 할머니는 먼저 올려보내요." 민호가 말했다. "어제 정오에 6cm 더 먹었거든." 서윤은 대답 대신 플라스틱 바구니를 접수대 아래에 밀어 넣었다. 이 수영장에서는 그런 질문에 오래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많이 먹은 사람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전혀 안 먹은 사람은 괜히 주목을 받았다. 둘 다 피곤한 일이었다. 서윤은 한 번도 스스로 묻지 않으려 했던 말을 목구멍 뒤로 삼켰다. 반장이 예전에 웃듯이 넘긴 설명, 하늘에서 오는 거 말고 바닥에서 오는 것도 있다는 그 말이,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더 정확한 문장처럼 들렸다. 정오를 알리는 전자음이 울리자, 수면이 먼저 흔들렸다. 누가 뛰어든 것도 아닌데 레인 끝마다 잔물결이 원형으로 퍼졌다. 서윤은 벽에 붙어 수심 눈금을 봤다. 1.2m에서 시작한 물선이 천천히 올라 1.25m를 지나고 있었다. 빠른 날에는 30초 만에 10cm가 찼고, 느린 날에는 3분이 걸렸다. 오늘은 그 중간쯤이었다. 수영하던 사람들 몇은 자연스럽게 몸을 띄웠고, 한 중학생은 웃음을 참지 못해 물을 먹었다가 기침을 했다. 이상한 건 냄새였다. 수영장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아니라, 막 비 온 뒤 운동장 흙 같은 냄새가 잠깐 났다. 서윤은 늘 그 냄새가 물보다 먼저 온다고 생각했다. 그때 5번 레인 맨 끝, 사다리 아래에 뭔가 끼어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에는 누가 벗어놓은 수모인 줄 알았다. 회색이고, 젖어 있었고, 물결 따라 천천히 펴졌다 접혔다. 그런데 접힐 때마다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끝이 다섯 개 보였다. 서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선을 다시 봤다. 사다리의 두 번째 단까지 물이 찼는데, 이상하게 그 물건만 잠기지 않았다. 마치 제 높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저기 분실물인가요?" 서윤이 묻자, 민호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민호의 시선은 사다리 쪽이 아니라 서윤의 발목에 가 닿았다. 질문이 오기도 전에 서윤은 왼발 양말 안쪽의 서늘함을 또렷하게 느꼈다. 아침엔 비가 오지 않았고, 운동화 끈도 마른 채였는데, 출근할 때마다 수영장 문도 지나기 전에 왼발만 먼저 축축해졌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오 급수는 앞으로 7분 더 이어졌다. 사다리 아래 회색 물건은 여전히 잠기지 않은 채, 물이 차오르는 속도와 똑같이 조금씩 위로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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