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일지 47번 칸

1챕터 · AI 시작

사람이 책을 빌리러 오는 시간과 책이 사람을 고르는 시간은 대체로 겹치지 않았다. 2031년 6월, 전주 완산구의 시립기록도서관은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었다. 정소라는 8시 10분이면 늘 지하 서고에 먼저 내려갔다. 사서들은 개관 전 20분 동안 반납된 자료를 분류하고, 서가 온도를 확인하고, 4층 열람실 창문 걸쇠를 점검했다. 그리고 소라는 마지막으로 금속으로 된 대여함 벽면을 한 번씩 두드렸다. 1번부터 60번까지, 납작한 칸마다 둔한 소리가 났다. 47번만 빼고. 그 칸은 매일 아침 유리컵을 손톱으로 튕긴 것처럼 가볍게 울렸다. 처음 듣는 사람은 빈칸이라서 그렇겠거니 했지만, 소라는 빈칸의 소리와 47번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었다. 빈칸은 비어 있었고, 47번은 늘 누군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실을 굳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배 사서인 문기호도 처음 인수인계를 할 때 대여 규정부터 읽어 주고 나서야 덧붙였을 뿐이었다. "47번은 학생증으로 안 열려요. 카드키도 안 먹고요." "그럼 어떻게 열죠?" "열릴 때가 있어요. 우리가 여는 게 아니라." 그는 그 말을 설명처럼 하지 않았다. 소라는 그 점이 오히려 편했다. 이 도서관에는 설명보다 순서가 중요했다. 반납함을 비우고, 목록을 대조하고, 지하 서고의 제습기를 확인하고, 그리고 47번이 오늘도 닫혀 있는지 보는 것. 닫혀 있으면 정상이었고, 가끔 열려 있으면 그날은 3층 향토신문실부터 비워 두어야 했다. 소라는 오늘도 장부를 펼쳐 반납 일지를 적었다. 6월 18일, 오전 8시 17분, 야간 무인 반납 26건. 청동 활자본 복제본 1권, 어린이 과학잡지 4권, 지역예산 결산서 2권. 그리고 기입란 맨 아래, 인쇄된 줄도 없는 자리에 연필로 적힌 문장이 있었다. 소라의 필체가 아니었다. 대여일지에는 늘 검은 펜만 썼는데, 문장은 옅은 회색이었다. 47번 칸 반납 완료. 소라는 페이지를 넘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제 마감할 때 그 문장은 없었다. 게다가 47번 칸은 반납이 아니라 대여함이었다. 누가 장난을 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규정을 비틀지는 못했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 청소 용역 아주머니인 박연심이 계단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정 사서님, 오늘은 일찍 왔네." "네. 반납이 좀 많아서요." "많긴 한데, 아까 어떤 학생이 먼저 내려갔던데? 교복은 아닌데 가방 메고, 젖은 우산 들고. 지하로 가더라고. 얼굴이 하얘서 금방 눈에 띄었어." 오늘 아침 전주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출근하면서 본 하늘은 마른 회색이었고, 소라의 운동화 밑창에도 물기 하나 없었다. 그런데 계단 바닥에는 방금 떨어진 듯한 물방울이 네 개,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래로 향하는 쪽이었다. 소라는 47번 앞에 섰다. 칸문은 닫혀 있었지만, 잠금 표시등이 꺼져 있었다. 문기호는 휴가 중이었고, 보안팀은 9시가 넘어야 내려왔다. 규정대로라면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상부 보고를 해야 했다. 하지만 장부에는 이미 반납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반납된 것이 있다면 분류 전에 확인해야 했다. 확인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먼저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도서관에서 분실은 늘 사고보다 기록의 문제였다. 박연심의 말이 뒤에 남아 있는 사이, 소라는 자신이 47번이 열린 날을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늘 누군가의 보고서로만 읽었고, 서고 정리 지침으로만 외웠다. 그런데 지금 발끝 앞에는 물방울이 47번 칸 아래에서 멈춰 있었다. 문은 닫혀 있는데 안쪽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고, 동시에 표시등 유리에는 소라 혼자 서 있는 모습만 비쳤다. 개관까지는 13분 남아 있었다. 그 안에 장부의 문장을 지울지, 47번의 기록을 처음으로 자기 이름 아래 남길지 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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