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선 바깥의 발자국
1챕터 · AI 시작
첫차가 들어오기 12분 전, 대합실 바닥에는 늘 마른 발자국이 먼저 생겼다.
2032년 1월, 인천 월미바다역 오전 5시 18분. 역사 안은 난방을 틀어도 유리 벽 쪽부터 식었다. 매표 창구 옆 안내데스크에 앉은 서희재는 장갑을 벗고 출근 확인표에 시간을 적었다. 5시 17분. 1분 늦은 시계는 어제도 그제도 그대로였지만, 아무도 고치지 않았다. 이 역에서는 첫차 전에 생기는 발자국 쪽이 더 정확했기 때문이다. 희재는 데스크 밑에서 노란 분필을 꺼내 바닥의 선을 다시 그었다. 개찰구에서 정차선 3번까지 이어지는 선이었다. 선 바깥으로 난 발자국은 지워도 되고, 선 안쪽으로 들어오면 역무원이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규정집 48쪽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유는 없었다. 적어도 희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청소 아주머니인 유분자가 밀대를 세워 두고 바닥을 내려다봤다. "오늘은 빠르네. 5시 20분도 안 됐는데." 희재도 봤다. 개찰구는 아직 닫혀 있었고, 출입문 유리에는 바닷바람 때문에 희뿌연 소금 자국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는 물기 하나 없는 운동화 자국이 4개, 정차선 쪽으로 가지런히 찍혀 있었다. 바깥은 밤새 눈이 날려 보도블록이 젖어 있었으니, 보통 발자국이라면 가장자리부터 녹아 번져야 맞았다. 저건 먼지 위에 눌린 것처럼 또렷했다. 270mm쯤 되는 오른발 자국이 먼저, 그다음엔 왼발이 약간 짧았다. 희재는 분필 선 안으로 들어온 마지막 자국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자국의 앞코가 정확히 선에서 멈춰 있었다. 선을 안 넘은 건지, 못 넘은 건지 알 수 없었다.
희재는 지우지 말라고만 말하고 싶었지만, 유분자는 이미 선 안쪽은 안 건드린다는 표정으로 밀대를 다시 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희재의 아버지도 선은 사람보다 오래 기억한다고 말했다. 희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 역에서 근무했다는 말을 유분자는 한 달에 한 번쯤 꺼냈다. 그때마다 꼭 다른 얘기처럼 들렸다. 희재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버스를 탔고, 바다 쪽 전철역 사진은 집에 한 장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남의 기억을 바로잡는 일이 발자국 지우는 일만큼 쓸모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안내 방송 점검음이 한 번 울리고 꺼졌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는데, 희재는 아주 짧게 숨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승강장 쪽 유리문을 봤다. 문은 닫혀 있었고, 반대편 선로 위 전등만 푸르게 켜져 있었다. 정차선 3번 앞 전광판에는 첫차 도착까지 9분이라고 떠 있었다. 그 아래, 발자국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4개로 끝이었다. 사람이 걸어왔다면 적어도 하나는 더 있어야 했다. 선 앞에서 멈췄다면 돌아간 자국이 있어야 했고, 뛰었다면 간격이 달라졌을 것이다. 희재는 그 계산을 천천히 해봤지만 바닥은 아무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그때 매표 창구 안쪽에서 야간 당직을 선 박준태가 5시 30분 열차 편성이 바뀐 거 들었냐고 물었다. 희재는 공지가 없었다고 답했고, 준태는 어제 희재가 직접 정차선 3번을 비워 두라고 적어 갔다고 말했다. 희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 퇴근은 10시였고, 공지판에 메모를 남긴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안내데스크 옆 코르크 게시판에는 파란 압정 2개로 종이 한 장이 고정돼 있었다. 희재의 이름이 분명히 아래쪽에 적혀 있었다. 서희재. 글씨도 자기 것과 닮아 있었다. 다만 마지막 받침이 조금씩 오른쪽으로 밀려, 급하게 쓴 사람의 글씨 같았다. 그는 자신이 그런 식으로 이름을 적지 않는다는 사실만 또렷하게 알았다.
유분자가 낮게, 그럼 저건 또 누구 발이냐고 말했다. 희재는 게시판과 바닥을 번갈아 봤다. 전광판 숫자가 8분으로 바뀌었다. 스피커는 조용한데, 승강장 쪽에서는 누군가 정차선 바로 앞까지 걸어와 멈추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바닥에는 새 자국이 생기지 않았다. 두 길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자기 이름이 적힌 메모를 믿을지, 지금 들린 발소리를 믿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