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힌 우산의 방향

1챕터 · AI 시작

우산꽂이에 꽂힌 우산은 주인을 닮는다고, 나는 오래 믿어 왔다. 2026년 7월, 울산 남구의 작은 회계사무실에서 퇴근 준비를 하던 오후 6시 40분에도 그 생각을 했다. 접는 방식, 손잡이의 마모, 빗물이 떨어지는 속도까지 다 다르다. 내 우산은 검은색 3단 우산이고, 밴드가 늘어나 늘 한쪽으로 비뚤게 감겼다. 그런 건 아침에 급하게 접은 사람만 만든다. 그런데 그날은 내 우산 옆에 똑같이 비뚤게 감긴 검은 우산이 하나 더 있었다. 같은 브랜드, 같은 긁힌 자국, 손잡이 끝에 붙은 편의점 가격표 자국까지. 나는 한참 서서 둘을 번갈아 봤다. 이상한 건, 내가 오늘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비는 5시부터 왔다. 출근할 때 하늘은 맑았고, 점심시간에 확인한 예보에도 비 소식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전 내내 창가 쪽 서류철을 정리하면서도 창문 밖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우리 사무실은 직원이 4명뿐이라 누가 뭘 들고 들어왔는지 대체로 기억하는 편이다. 특히 나는 남의 물건 위치를 잘 외운다. 정리 담당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걸 기억해 두면 일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김 소장은 계산기를 늘 오른쪽 서랍에 넣고, 박 실장은 점심 뒤에 비타민을 먹고 통을 책상 위에 둔다. 내 자리 뒤 복사용지 박스는 항상 2개. 그런 식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우산 하나가 어디서 생겼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주임님, 아직 안 가세요?" 박은지가 가방 지퍼를 올리며 물었다. 은지는 나보다 3살 어리고, 내가 예민해 보일 때는 꼭 웃으면서 말을 붙였다. 나는 우산꽂이 쪽을 가리켰다. "은지 씨, 오늘 누가 우산 놓고 갔나?" "우산이요? 다들 가져왔던 거 같은데. 아, 점심 전에 세무서에서 손님 한 분 왔잖아요. 그분 거 아니에요?" 세무서에서 온 사람. 오후 1시 20분쯤, 장부 확인 때문에 잠깐 들른 남자였다. 이름은 듣고도 흘려들었다. 40대쯤, 셔츠 소매를 한 번 접고 있었고, 말수는 적었다. 수상하다고 할 만한 건 없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기억에 덜 남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상담실 문 앞에서 한 번 멈춰 서 있던 장면은 선명했다.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오지도 않고, 유리문에 비친 안쪽을 잠깐 보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냥 누굴 찾나 보다 했는데, 지금 떠올리니 그 시선이 정확히 어디를 향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자리였는지, 우산꽂이였는지, 아니면 나였는지. 은지가 먼저 내려가고 사무실엔 에어컨 소리만 남았다. 나는 우산 두 개를 바닥에 나란히 놓고 차이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짓이 우습다는 건 알았다. 검은 우산이야 널렸고, 가격표 자국도 비슷할 수 있다. 내가 아침에 우산을 안 가져왔다고 확신하는 것도, 사실은 확신이라기보다 기억의 모양 같은 것이었다. 현관 옆 긴 의자 위에 가방만 챙겼던 것 같고, 손이 가벼웠던 것 같고, 그래서 버스 손잡이를 잡을 때 편했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뒤집힌다. 몇 년 전 건강검진 날도 나는 분명 금식을 지켰다고 우겼다가, 주머니에서 사탕 껍질이 나왔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내 감각보다 물건의 위치를 더 믿는다. 그런데 지금은 그 물건의 위치가 오히려 나를 흔들고 있었다. 상담실 쪽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책상 위가 아니라, 바닥에 가까운 낮은 곳에서 울리는 짧은 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유리문 너머를 봤다. 불 꺼진 상담실 안은 비친 것만 보여서 더 어두워 보였다. 잠시 후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이번에는 분명히 우산꽂이 아래쪽이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두 우산 사이를 벌렸다. 검은 우산 하나의 밴드 안쪽에 접힌 메모지가 끼워져 있었다. 젖지 않게 비닐 영수증으로 한 번 감싸 둔, 누가 봐도 일부러 숨긴 모양이었다. 나는 그 메모가 내 것인지, 그 남자의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둘 중 어느 우산도 내 것이 아닌지 결정해야 했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약해졌는데, 창문에 떨어지는 물방울은 오히려 더 커 보였다. 그때 아래층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건물 현관 종은 울리지 않았는데, 발소리는 분명 2층에서 멈추지 않고 3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휴대폰 화면에 은지에게서 메시지 1개가 떴다. 주임님, 아까 우산 얘기하실 때요. 왜 그 사람 걸 보고 같은 거라고 하셨어요? 손님은 우산 안 들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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