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명부 철제함

1챕터 · AI 시작

새벽 4시 20분에 셔터가 올라가면 출입문 옆 철제함 뚜껑은 닫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춘천 근화동 골목 끝의 데이터 보관창고 앞에 도착했을 때, 철제함은 열려 있었다. 입사한 지 5일째였고 이 건물에 혼자 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전날 저녁 팀장이 보낸 위치를 보고 택시에서 내렸을 뿐이라 건물 뒤편이 막다른 골목인지도 몰랐다. 회색 3층 건물 외벽에는 회사 이름 대신 영어 약자가 붙어 있었고, 현관은 번호키와 카드 태그를 같이 써야 열렸다. 철제함 안에는 방문기록판과 사인펜, 비상용 출입카드가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았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함 안을 봤다. 사인펜 있고, 카드 있었다. 다만 방문기록판 맨 위 장이 이미 한 줄 채워져 있었다. 날짜는 오늘이었다. 시간 칸에는 4시 05분. 이름 칸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씨는 내 글씨가 아니었다.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번 울리고 자동응답으로 넘어갔다. 끊고 다시 걸자 이번에는 받았다. "서윤 씨, 도착했어요?" "네. 그런데 명부에 제 이름이 먼저 적혀 있어요. 제가 아직 안 썼는데요." 잠깐 정적이 있었다. 멀리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시간 몇 시로 돼 있어요?" "4시 05분이요." "그럼 들어가지 말고 밖에 있어요. 현관만 열어 두고, 엘리베이터는 타지 말고." "왜요?" 팀장은 대답하지 않고 끊었다. 다시 걸자 전원이 꺼졌다는 안내가 나왔다. 철제함 뚜껑을 닫으려다 안쪽에 붙은 점검표를 봤다. 야간 근무자가 하는 순서가 적혀 있었고, 맨 마지막 항목인 '새벽 첫 출입자 확인' 옆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그 아래 빈칸에는 볼펜 자국이 여러 번 눌려 있었다. 글씨를 쓴 게 아니라 같은 자리를 급하게 찍은 자국이었다. 유리문 안을 들여다봤다. 로비 바닥 한쪽에 물기가 번져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그건 이상하지 않았다. 냉각기 필터를 갈지 않으면 새벽에 응축수가 떨어진다고 선임이 어제 말해 줬다. 이상한 건 물기 위에 찍힌 운동화 자국이었다. 자국은 두 개였고, 안쪽에서 문 쪽으로 나오는 방향이었다. 문 앞 한 걸음 거리에서 끊겨 있었다. 현관 잠금 표시등은 빨간불이었다. 밤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카드지갑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고 그 너머로 로비가 보였다. 사람은 없었다. 건물 안에서는 냉각기 모터 소리만 계속 났다. 등 뒤에서 금속 부딪는 소리가 한 번 났다. 돌아보니 철제함 뚜껑이 닫혀 있었다. 나는 뚜껑을 다시 열었다. 방문기록판 맨 위 장에 두 번째 줄이 채워져 있었다. 시간은 4시 20분, 이름 칸에는 팀장 이름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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