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표시 스티커

1챕터 · AI 시작

문을 열기 전부터 오늘 들어온 화환들의 수분표시 스티커가 한꺼번에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파란색은 물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아침 8시 조금 전, 광주 서구의 장례식장 꽃관리실 앞에서 세훈은 커피 뚜껑을 닫은 채 잠깐 섰다. 밤새 아무도 물을 주지 않았는데 열 대가 전부 파랬다. 예전에는 꽃잎을 만져 보고 물통을 들어 봐야 알았다. 스티커가 나오고부터는 색만 보고 오전 순서를 정한다. 하얀 것부터 물을 채우고, 파란 것은 그대로 둔다. 오늘은 채울 게 없었다. 꽃관리실 안쪽에서는 윤재가 리본 문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검은 조끼 위에 비닐 앞치마를 두른 채, 프린트된 조문 띠를 손바닥으로 눌러 반듯하게 폈다. 조문객이 오기 전에 포장 비닐을 벗기고, 시든 바깥잎을 떼고, 리본이 젖지 않게 높이를 맞춰야 했다. "7호 빈소 건은 취소 안 됐대요?" "아직. 대신 화환은 줄일 수도 있대. 가족이 외지에서 온다던데." "7호 백합은 어제 들어온 걸로 쓰면 돼요. 창가에 세워 뒀어요." 세훈은 창가로 갔다. 백합 한 단을 들다가 손을 멈췄다. 줄기 아래를 감싼 젤 포대가 예상보다 무거웠다. 운송용 수분 젤은 반나절이면 투명해지는데, 이건 아직 은회색이었다. 세훈은 포대를 벗겼다. 젤이 갈라지며 물방울 몇 개가 작업대 위로 흘렀다. 포장 띠 끝에는 꽃집 이름도 발주 코드도 없었다. 은색 필름 위에 활자가 한 줄만 박혀 있었다. '2차 수분 공급 불필요 — 자체 순환' 세훈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꽃에 쓰는 말이 아니었다. 필름 끝에 사람 손톱만 한 검은 씨앗이 하나 붙어 있었다. 씨앗에서 나온 가는 뿌리 두 가닥이 이미 리본 안쪽 천으로 파고들어 있었다. "윤재야. 어제 들어온 거 몇 단이야?" "열 대 전부요. 같은 데서 왔어요." 세훈은 옆 화환의 리본을 젖혔다. 안쪽 천에 가는 뿌리 두 가닥이 같은 자리에 파고들어 있었다. "윤재야. 이거 우리가 물 준 거 아니야." 세훈은 나머지 화환들 리본을 하나씩 젖혔다. 여덟 대에 같은 뿌리가 있었다. 남은 두 대는 리본 안쪽이 이미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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