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꽂이의 방향
1챕터 · AI 시작
내 칫솔은 항상 왼쪽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2024년 4월의 목요일 오전 6시 12분, 천안 서북구 불당동 오피스텔 12층 내 집 세면대 앞에 섰을 때 제일 먼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거울 속 내 얼굴이 아니라 칫솔모가 오른쪽 벽을 향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혼자 산다. 이름은 한서진, 서른셋이다. 출근 준비는 거의 자동이다. 물을 올리고, 세수를 하고, 칫솔에 치약을 짠다. 자동으로 해도 되는 일이라서 더 분명히 안다. 내가 칫솔을 꽂을 때 손잡이를 바깥쪽으로 두는 건 이유가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눈이 피곤해서, 손만 뻗어도 잡히게 하려고. 습관이라는 건 설명이 붙는 순간 우스워지지만, 적어도 그 습관이 내 것이란 건 확실하다. 전날 밤에 내가 피곤해서 거꾸로 꽂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양치를 했다. 그런데 입안을 헹구다 말고 다시 칫솔 꽂이를 봤다. 내 것 옆에 있는 연두색 치실 손잡이도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치실은 원래 컵 쪽으로 기대 두는데, 오늘은 벽 쪽으로 누워 있었다. 손댄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 것처럼, 한꺼번에. 나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싱겁게 웃었다. 또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비밀번호는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집 안은 그대로였다. 거실 탁자 위 택배 상자, 소파 팔걸이에 걸어 둔 회색 가디건, 싱크대에 말려 둔 머그컵 두 개. 없어지거나 늘어난 건 없었다.
정류장 벤치에는 늘 먼저 나와 있는 윤지혜가 앉아 있었다. 지혜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내가 또 잠을 설쳤냐고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전날 해 놓은 물건 위치가 아침에 바뀌어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지혜는 캔커피 뚜껑을 따다가 내가 피곤한 것 같다고 했다. “요즘 교대가 섞였잖아.” 그 말이 맞았다. 몸이 먼저 망가지면 감각도 틀어질 수 있다. 그런데 지혜는 곧 내가 어제 자기한테도 비슷한 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샴푸 펌프 방향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기억 안 나느냐는 말이었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제 점심시간에 지혜와 김치찌개를 먹은 건 기억났다. 지혜가 휴게실 자판기 커피값이 또 올랐다고 말한 것도 기억났다. 그런데 샴푸 얘기만 뚝 비어 있었다. 그 공백이 더 불쾌했다. 사람은 자기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보통은 틀린 자리의 감촉이라도 남는다. 이번에는 없었다. 누가 거기만 깨끗하게 닦아 낸 것처럼.
퇴근 후 나는 관리실에 들렀다. 예민해진 것 같다고 둘러댔지만, 경비원은 의외로 쉽게 출입 기록을 보여 줬다. 내 호실 기록은 출근할 때와 돌아올 때, 두 번뿐이었다. 마스터키 사용 기록도 없었다. 경비원은 이런 걸 묻는 사람이 가끔 있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지를 돌려받는데 그는 낮에 택배 기사 한 명이 12층에서 한참 서 있었다고 덧붙였다. 어느 집인지 헷갈렸나 보였다. 12층은 세 집뿐이었다. 나는 오늘 주문한 게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욕실 불을 켰을 때, 나는 한동안 문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아침에 분명 비워 두고 간 컵 안에 칫솔이 두 개 꽂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내 흰색 칫솔이고, 다른 하나는 낯선 검은색 칫솔이었다. 새것처럼 마른데, 칫솔모 끝만 아주 조금 벌어져 있었다. 누가 한두 번 쓴 뒤 말려 놓은 것처럼. 흰 타일 앞의 검은 칫솔에서는 희미한 민트 향이 났고, 세면대 배수구 쪽에서는 오래 젖은 수건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검은 칫솔을 바라보다가, 관리실에서 받아 온 출입 기록지를 펼쳤다. 하단 구석에 볼펜으로 눌러 쓴 메모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의 글씨는 아니었다. 숫자 넷자리 같았는데, 마지막 한 자리가 번져 있었다. 1203인지 1208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숫자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그때 복도 쪽에서 금속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한 번 났다. 층 점검 카트가 올라온 소리 같기도 했고, 누가 빈 컵을 문 앞에 내려놓은 소리 같기도 했다.